나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물론 거짓말이다. 사진을 안 찍고 살 수는 없다.(있나?) 맛있는 음식, 오랜만에 만난 친구,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마주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는다. 요즘은 카메라로 실제 세계를 사진 찍는 일보다 휴대폰 화면을 캡처하는 일이 더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는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는 행위가 나에게는 낯설고 어렵다. 어렸을 때부터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논리의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다른 대상을 찍지 않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기억을 잃어버리기 쉽다. 기억은 기록보다 연약하다. 그렇지만 사진으로 붙잡을 수 없는 기억도 있다. 아래는 다섯 장소를 경험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 걸러지고 남은 장면들이다. 물론 내가 찍은 사진은 없다.
청계천에 자주 산책하러 나오는데 생태 환경을 잘 조성해놓은 청계천과 존치교각이 어울리지 않아 흉측하다 - 박 씨
교각 3개 모두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거나 새롭게 도색을 했다면 지역 명물이 됐을 것. 철거 과정에서 파손된 형태를 유지하는 데 반대한다. - 오주민 씨
과거와 비교해 존치교각 주변도 잘 관리되고 있어 긍정적으로 본다. 예전 청계천 인근 지역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 김병호 씨
존치교각이 앞으로 더 활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 환경과 이질적인 풍경 자체가 오히려 지역적 특색이 될 수 있다. - 김덕희 씨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보는 만큼 안다는 말도 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틀렸다. 알기만 하고 보지 않으면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보기만 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알기 위해서는 ‘알아’ ‘봐야’ 한다. 책을 펼쳐 읽고, 사람을 만나 묻고, 몇 번이고 다시 보고 거듭 물어야 한다. 내가 보고 아는 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말이다.
뱀: 인간은 새끼를 낳으면 과외 공부다, 주산이다, 미술이다 해서 엄청 괴롭히지만 뱀은 자식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일찌감치 새끼들을 뿔뿔이 흩어 보내지요. 넓은 세계를 나름대로 체험하고 헤쳐 나가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게 무서워서 자식들을 꼭 품고 보호하지요? 자식들이 바보가 되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뱀 중에는 바보는 없습니다. 천재도 없지만.
바위: 바위는 그냥 있는 겁니다. 그게 바위의 미덕입니다. 인간은 그런 미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성과와 생산물을 내야 하는 걸로 알고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