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나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물론 거짓말이다. 사진을 안 찍고 살 수는 없다.(있나?) 맛있는 음식, 오랜만에 만난 친구,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마주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는다. 요즘은 카메라로 실제 세계를 사진 찍는 일보다 휴대폰 화면을 캡처하는 일이 더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는 사진 찍기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켜는 행위가 나에게는 낯설고 어렵다. 어렸을 때부터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논리의 비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다른 대상을 찍지 않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지 않으면 기억을 잃어버리기 쉽다. 기억은 기록보다 연약하다. 그렇지만 사진으로 붙잡을 수 없는 기억도 있다. 아래는 다섯 장소를 경험하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 걸러지고 남은 장면들이다. 물론 내가 찍은 사진은 없다.

  1. 241129
  2. 적산가옥 敵産家屋
  3. 부자재 副資材
  4. 부품 部品
  5. 경비원과 언쟁
  6. 241206
  7. 전기는 어디서 끌어 오는가?
  8. 주목 朱木
  9. 수표교 水標橋
  10. 전태일 다리 기울어진 타일
  11. 날지 않는 새
  12. 갈대와 억새
  13. 존치교각
  14. 비우당교 庇雨堂橋
  15. 동대문 전차 종점
  16. 성동에 살아요
  17. 너구리 출몰 주의
  18. 살곶이 다리
  19. 241213
  20. 현안 懸眼
  21. 시기별 성곽 축조 방식
  22. 스타벅스 장충 라운지 R점
  23. 축대
  24. 조명탑
  25. 공터
  26. 동대문 네팔 타운
  27. 언덕 위 버려진 자동차
  28. 혼분식 混粉食 장려 운동
  29. 241220
  30. 지하 보도 야채 가게
  31. 이름 모를 국기
  32. 식용 개구리
  33. 해외 가요가 흐르는 공원
  34. 낙엽이 쌓인 길가
  35. 사거리에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36. 롯데리아 계엄점
  37. 241227
  38. 집창촌 너머 오래된 집
  39. 원통 위의 집
  40. 경성방직
  41. 대선제분
  42. 수입상가
  43. 서도호, 카르마, 2009
  44. 호랑이 연고
  45. 콜라텍
  46. 지르박 Jitterbug
  47. 해가 잘 드는 좁은 공터
  48. 순대국

보아도 모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보는 만큼 안다는 말도 있다. 내가 보기엔 둘 다 틀렸다. 알기만 하고 보지 않으면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보기만 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알기 위해서는 ‘알아’ ‘봐야’ 한다. 책을 펼쳐 읽고, 사람을 만나 묻고, 몇 번이고 다시 보고 거듭 물어야 한다. 내가 보고 아는 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 말이다.